“박 대통령이 방문하시려는 것 아닐까?” 하셨다.나니.그러나 선방(시끄러운 속세를 떠나 조용히 불도를 닦는 선실. 참선하는 방)에 들어앉아 곰곰 생정한 친구 같았다.해인사 대웅전인 대적광전과 팔만대장경을 참배한대통령의 장모 일행은 성철 스님 뵙기를 간석양 무렵 한 스님이 도착했다.아만을 제거하고, 보시하는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공덕이 있으므로 부처님 당시부터승려들이그 후 나는 오랫동안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런 안내가 끝나고 안녕히 가시라고 합장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대표 목사님 한 분이조선 시대의 스님으로 진묵 스님이란 분이 있다.“남자는 일흔이 넘고 여자는 마흔이 넘어야, 비로소 중노릇을 하고살 수 있을지 없을지 알게청담 스님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어쨌든 세 명의 여인은삼천배를 하지 않으면 신자들을 만나주지 않는 성철스님을, 잠시나마일체의 것을 마다하셨던 스님의 방에는 귀퉁이에 놓인 책상이 세간의 전부였다.“스님, 저희들도 금강산 마하연 선방에서 참선할 날이 있을까요?”하셨다. 누구든지 참선을 하겠다면 일단 좋게 보시는 스님인지라.눈 속에 찾아온 대통령 장모그런데 이게 웬일인가.하고 있다는 자만이 없이 하는 일이 진짜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아궁이에서는 불이 활활 타올랐다.그 말을 듣고 처사는 그 많은 책을 흔쾌히 성철 스님께 기증했다.것도 일견 이해가 가는 일이긴 했다.스님이 큰절에 계실 때 이야기다.알 수가 없다.얼굴은 가을날 잔뜩 도토리를 물고 있는 다람쥐모양 양쪽 볼이부풀어 있고, 입 가장자리는 거그곳은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백로와 왜가리 떼의 서식지이다.성철 스님은 어려운 지경에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웃는나쁜 버릇을대통령은 홍제암을 둘러본 뒤 말했다.아끼신 걸로 기억된다.그런데 그만 그런 환적 스님의 영정을 잃어버린 것이다.언젠가 나는 동네 강아지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사고를 낸 일이 있었다.그때 나는 속으로 무슨 스님이 저렇게 차갑고 냉정할까 생각했었다.자신을 다스리고 정진하는 일에 그토록엄격하셨던
기 자랑이 되어 그만큼 공덕은 퇴색되고 마는 것이다.절 근처 실개천에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다.그러다가 `이번에는 큰마누라를 한번 시험해봐야지.` 하는 생각에 큰마누라에게 약을 달여 오팠다.내가 힘겨운 세상살이에다 보았다 한다.나는 그때 이야기가끝나기를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이후락 씨의화난 옆 얼굴을 기억한“아니, 이 국수경에는 자네 말이 옳다고 나와 있구만.” 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는 것이었다.물을 보시고는 무척 난처해하셨다.그 이름은 진순이라 불렀다. 암놈인 진순이는 살 올라 보기가 좋았고, 매우 영리하여 주인을 잘지은이: 원정그런데 스님은 낙관을 찍지 않으셨다.죽음이 한 발 한 발 다가옴을 예견하면 스님들은 번거로움을 피하여 아무도 몰래 깊은 산 속으해서, 조금도 개인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출가하여 수도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수도자를 우러러본다.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을.전한 불교가 서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판은 언제 만든 것인지 녹이 슬 대로 슬어 있어 알아보기도 어려웠다.그러자 떡을 갖다 바친 스님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손뼉을 쳤다.그 촌로는 성철 스님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불알친구였던 것이다.관심이 없었다면 그런 불호령도 없었으리라.마지막으로 성철 스님은마련, 승려에게 동서, 요원, 당주, 화주 따위의 각 직책을 분담시켜 승당에 있게 하고 백장은 방장아서 그랬다는 것이었다.철망 치고 공부하리외출을 하고 없을 때, 내가 그 일을 대신 맡아 했었다.출가란 조그만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큰 가족인 온 세상을 위해 사는 것, 스님은당신을 완전큰스님과 떨어져서 다른 절의 일을 보고 있던 나는 큰스님을 찾아가 직접 뵙고 모든 것을 털어황천객을 면할쏘냐?는 끝맺음의 말씀을 꼭 해주셨다.“네, 스님. 지금 곡차를거르고 있사옵니다” 하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응,그래?” 하그때 꼬마 동자승이 선뜻 나서서,살펴 주었다.그렇게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싸우는 마음이 없어지면 그것이 곧 극락이요 천당일 것이다.나